news 세초동자의 고향 국립조선왕조실록 박물관을 가다

세초동자의 고향 국립조선왕조실록 박물관을 가다

세초동자의 컨셉은 조선왕조실록을 만들기위하여 실록 작성이 완료한 후 사초나 초고들을 파기하던 (물에 씻어) 행위를 모티브로 했습니다.

그래서 세초동자는 조선왕조실록이 고향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국립조선왕조실록 박물관에서 저희 문서세단기를 발주 하셨습니다.

 

자동급자 문서세단기

이곳에 주문하신 문서세단기는 제이어스가 자랑하는 자동급지 문서세단기입니다. 개장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인지 사무실이 아직 정비되어 있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래도 사무실에 계시는 직원분들이 세초동자라는 저희 브렌드에 깜짝놀라면서 반가워 하시면서 이름 잘 정했다고 칭찬을..... 사실 다른곳에 가면 세초동자 설명을 한참하고 오는데 오히려 여기서는 세초를 학문적으로 설명 듣고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 조선왕조실록, 역사를 지키다 오대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은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불법 반출되었다가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대부분이 화재로 사라지고 현재 성종·중종·선조·효종실록 일부 75 책이 남아 있으며 110년 만에 오대산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 중 성종실록 9 책과 중종실록 50 책은 다른 정본(正本) 실록과는 달리 교정을 보았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어 조선시대 교정 체제를 알려주는 귀중한 역사 자료이다. ​ * 조선왕조의궤, 왕조의 모범을 보이다 의궤는 의식(儀式)과 궤범(軌範)을 합친 말로 ‘의식의 모범이 되는 기록’이란 뜻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나 왕실의 중요한 행사의 모든 과정을 기록과 함께 그림으로 정리하여 의궤를 제작하였다. 오대산사고본 의궤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진행한 도서정리사업으로 서울로 이관되었다가 1922년에 조선총독부에 의해 고종·순종 대 의궤를 중심으로 82 책이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2011년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 * 깊은 산속에 품은 조선왕조의 역사, 오대산사고 오대산사고는 월정사 북쪽 20리 남호암 기슭에 있었던 조선시대 주요 서적을 보관한 외사고 중 하나이며 임진왜란 이후 설치되었다. 사고의 서책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도서 정리 사업에 의해 서울로 이관되면서 외사고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 오대산사고의 건물은 한국전쟁 당시 불에 타서 터만 남았으나 1992년 사각(史閣)과 선원보각(璿源譜閣)으로 이루어진 사고의 건물을 복원하여 현재는 사적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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